2024. 10. 15.
인간의 역량을 확정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도구이기 전에, 먼 훗날 멸절을 가져올지도 모를 멸종이기 전에, 지금 이곳에서 읽고 쓰고 소통하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모순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 김성우 작가
생성형 인공지능은 무엇을 생성하는걸까요?
이 글의 제목은 정확히 그동안의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보통 우리는 Ai 도구를 잘 활용하면 그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GPT를 활용할 수 있을지 궁리합니다. 그 누구도 글을 읽고 쓰며 생각하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정말이지 AI 도구를 소개하는 콘텐츠들을 한 번 살펴봅시다. 대개는 극찬과 경고라는 두 입장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둘 다 공포 마케팅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끕니다. 뒤처지면 안 된다고. (저 역시 이런 제목들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수도 있다. 일단 보게하려면.)
김성우 작가는 환호와 경고의 경계에서 '생성'이라는 말의 뜻을 성찰합니다. 보통 생성의 일반적인 의미는 '만들기(generation)'이지만 철학에서의 생성의 의미는 '되기(becoming)'를 뜻합니다. 이 두 가지 뜻은 평소 우리가 글을 읽거나 쓸 때 '생성'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의 '생성'에서 글쓰기 주체는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생성 없는 생성(Generate without becoming)
우리가 특정 글을 읽을 때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은 다시 텍스트에 반영되어 풍성한 읽기를 만듭니다. 일기처럼 자신을 성찰하는 글을 쓸 때에도 곰곰이 떠오른 생각을 문자로 표현할 때 생성된 문자는 다시금 아이디어를 만들어 한 층 깊고 넓은 생각의 층을 만들어 냅니다. 이처럼 읽고 쓰는 과정에서 인간은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됩니다.
반면 "인공지능은 단순히 나의 글쓰기를 돕는 보조도구가 아니라 제가 계획하지 않은 내용을 완결된 형태의 텍스트로 만들어주는 생성의 주체"가 됩니다. 전통적 리터러시의 과정에서 경험하던 순환 구조를 분리시키고 인공지능이 주체가 됩니다. 생성없는 생성.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이 추구하는 리터러시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워드와 GPT의 글쓰기는 질적으로 너무 큰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글쓰기 과정의 효율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글쓰기 과정'을 만들어내기에 이를 활용하는 우리 자신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성찰하게 만듭니다.
계기로서의 인공지능
인간의 역량을 확정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도구이기 전에, 먼 훗날 멸절을 가져올지도 모를 멸종이기 전에, 지금 이곳에서 읽고 쓰고 소통하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모순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 김성우 작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24년 4월에 출간한 <학습의 미래 만들기: 교육 4.0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라는 보고서에는 교사들이 근무 시간의 44%만 수업에 사용하며 많은 시간을 행정 업무에 할애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현장에서 많은 행정 업무로 고생하는 교사들에겐 생성 없는 생성도 적절한 사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사로서 수업 전문성을 기르고 학생들과의 관계적 교육에 힘쓰며 학부모와의 상담과 학년 행정 업무 등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할 짐들이 너무 많습니다. 교사에게 주어진 과도한 업무는 결과적으로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에게 부담과 피해를 안겨주게 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모순을 직시하는 계기로서의 인공지능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헬퍼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SSAMBOT_
(글을 작성할 때는 오직 성찰하며 직접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