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4.
현재 우리 삶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회가 지혜를 갖추는 것보다 과학이 더 빠르게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Isaac Asimov
혹시 우리는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NVIDIA의 CEO 젠슨 황은 2023년 국립 대만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당신의 일자리를 뺏는 것은 AI가 아닌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조건 달려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뭔가 울림이 있지만 한편 무책임한 말처럼 들립니다. 방향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데 무조건 달려야 한다고? 방향을 잘못 잡으면 유턴해야 하는데? 보통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라고 했는데? 대 인공지능 시대 앞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은 뒤바뀐걸까요?
게다가 반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메시지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메신저 젠슨 황입니다. NVIDIA 주가만 봐도 "그 때 살 껄"하며 껄무새가 되기 십상일 정도로 그가 보여준 성공 사례는 경이롭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각종 미디어들은 그의 말을 받아쓰기 바빴습니다. 누구도 비판하거나 성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중들은 그의 연설에 깊은 인상을 받고 출렁이는 성공 파도를 타기 위해 각종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AI 기술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들의 제목을 주목해 보시죠. 대부분 나무늘보처럼 가만히 있는 우리를 질책하듯이 쾌속정에 탑승하라고 난리입니다. 참고로 어떤 유튜브 콘텐츠 창작자의 닉네임이 '뒤죽'이었습니다(뒤쳐지면 죽는다의 줄임말).
맹목의 시대 속에 발견한 따뜻한 통찰
어쩌면 저도 그런 뒤죽 마인드를 지닌 사람 중에 한 명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적어도 불안과 초조함에 사로잡혀 다가온 시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궁리 속에 발견하게 된 책 한 권이 바로 김성우 선생님의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였습니다. (일단 출판사부터 좋다. 유유 출판사는 내 취향과 99% 일치할 정도로 읽고 후회한 책들이 적었습니다.)
저자인 김성우 작가님은 응용언어학자로서 개인과 사회, 기술과 리터러시가 엮이는 방식을 연구하는 분입니다. (책 소개에 그렇게 나와 있네요.) 1장 "읽고 쓰는 인공지능이 던지는 질문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미래에 대한 준비'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과장되고 '과거에 대한 망각'은 은밀히 조장되는 사이에 '현재에 대한 방기'가 자라납니다.
이 문장을 거꾸로 읽어 보면 이렇습니다. 현재에 대한 방기 혹은 방치는 "과거를 잊고 미래만 강조"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문장도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회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혼란과 두려움을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이미 다가온 미래가 아닌 항상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에 집중하고 관점을 확립하는 것
우리는 리터러시를 단순하게 '문해력'이라고 번역합니다. 김성우 작가는 더 나아가서 리터러시를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 기능적 리터러시입니다. 쉽게 말해, AI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적재적소에 창의적이고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을 말합니다.
둘째, 비판적 리터러시입니다. 양면성을 아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화석 연료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냉난방을 제공해 주지만 기후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셋째, 성찰적 리터러시입니다. 관계적 지식을 바탕으로 성찰하는 사람의 태도를 말합니다. 인간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도 인간을 만드는 것처럼 둘의 순환적 관계를 성찰함으로써 더 나은 존재로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 이 책은 현재에 집중하고 분명한 리터러시를 확립하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무조건 달려야 한다는 젠슨 황의 조언과 상반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제안하고 있는 방향 중에 과연 어느 방향이 맞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김성우 작가의 성찰이 더 좋습니다.
SSAMBOT_
(글을 작성할 때는 오직 성찰하며 직접 씁니다.)